⟪유랑하는 몸⟫(2025.10.16~11.05, EIP, Seoul) 전시 전경

⟪유랑하는 몸⟫(2025.10.16~11.05, EIP, Seoul) 전시 전경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하연: 안녕하세요 저는 집과 기억, 정체성과 소속을 주제로 작업을 해오고 있는 김하연입니다. 주로 털과 유리를 이용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원: 안녕하세요, 짐 싸기 테트리스에 도가 튼 김지원입니다.

시호: 안녕하세요. 효용에서 벗어난 것들을 다정히 선보이고 싶은 이시호입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사진 작업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전시의 핵심 키워드인 ‘유랑’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하연: 유랑은 움직임이 아니라 인식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아요. 가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맞나?’ 이런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에 제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음을 느낍니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이 유랑의 순간이 아닐까 해요.

지원: 불편하지만 삶에서 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귀찮지만 없으면 낯설고 허전한 것이에요. 옛날엔 이동(유랑)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싫진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싶을 때쯤 ‘옛다!’하고 불안을 안겨주기도 해요.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시호: 저는 '유랑'을 신체가 머물 곳이 없는 상태를 넘어 정서적, 내면적으로 확장된 단어로 여깁니다. 청소년기 시절 '집'이라는 공간이 물리적으로 안전하지 않았던 경험은 제가 정서적으로 귀속된 장소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고, 나아가 내면에서 자아를 찾기 위해 헤매는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게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어가 '유랑'입니다.

김하연, <나무 위 집(Tree House)>, 2025, 나무, 털, 종이, 가변설치

김하연, <나무 위 집(Tree House)>, 2025, 나무, 털, 종이, 가변설치

‘집’ 혹은 ‘머무는 장소’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하연: 개인적인 일화가 있는데, 할머니께서 치매로 투병 중이세요. 그런데 자신의 아들도, 손녀인 저도 알아보지 못하시는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집으로 가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집에 계시면서 어디로 가야 한다는 걸까, 그 집은 어떤 집일까 미스터리로 남았어요. 찾아보니 많은 치매 환자 분들께서 비슷한 말을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모든 기억들이 계속해서 휘발되고, 섞이는 상황에서는 ‘어떤 곳이든 잠시 머무는 임시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반대로 내가 어디에 있던 그곳을 알아가고, 내가 나를 기억하면 ‘잠시 머무는 공간일지라도 잠시 동안은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결국은 집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지원: 어느 곳도 나의 집이 아니지만 어느 곳이든 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요새는 집은 그저 물리적 공간이고, 그 공간을 채우는 것들이 모여 그 사람의 집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물건들과 비물질적인 어떤 것들을 한데 모아 원하는 곳으로 가면 그곳이 내 집이라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볕이 잘 들고 환기가 잘 되며 습하지 않고 냄새나지 않는 안전한 집이 제 명의로 있길 바라긴 해요. 명의는 불안을 해소해주니까요.)

시호: 본연의 ‘나’로서 존재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곳, 가능하다면 나아가 소속감을 느끼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게 아닐까요.

개인적인 경험이 지금의 작업으로 확장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하연: 벨기에에서 일 년 동안 지내면서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유럽에서 동양인으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하루는 집으로 가다가 두 번의 ‘칭챙총’을 듣고 바로 플래미쉬(벨기에식 네덜란드어)로 길을 묻는 벨기에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거든요. 그때 내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분명히 속하지 못하는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는데 그것이 언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피부색, 외형에서 오는 것인지 그 모두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아닌지 고민했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완전히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벨기에에서 지내는 동안 만든 털 벽돌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또 한국의 벽돌에 끼워진다던지 한국의 공터에 잘려진 나무가지라던지를 가지고 함께 설치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더라구요.

지원: 이동이 잦다보니 짐 싸는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늘어가는 짐을 어떻게 잘 배치하고 정리할지 고민하다가 도라에몽의 4차원 주머니 같은 것이 제게도 필요했어요. 그러다 나온 것이 <봇짐>입니다.

시호: 저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마포구에 거주했는데, 당시 주변 상가가 굉장히 잦은 리모델링 공사를 하더라구요. 그러던 중, 공사장마다 나타나는 안전고깔이 한시적으로만 그 장소를 점유하고, 실질적으로는 하찮은 도구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일용직 노동자 등의 사회적 약자와 겹쳐보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감정을 회화로 구성하며 현재의 작업에 이르렀습니다.